Monday, April 13, 2015

디자인 -공예의 기원


선사시대의 인간이 어떤 생활을 하였는가를 알아보자면 그들이 살던 집터나, 그들이 묻힌 분묘, 그리고 거기에서 발견되는 그들의 도구 등을 통하여 그 면모를 더듬어 볼 수 있다. 석기·골기·토기 등이 그 주류를 이룬다. 풍화나 부식이 잘 되지 않는 석기류가 제일 많다. 패총 같은 데서 이런 것들이 잘 보존되어 있다가 출토되고 있다.

이렇게 출토되는 자료들은 거의 당시의 생활에 필요하였던 도구들이다. 이 도구들은 사람의 손발의 기능을 더 확대, 연장하여 의식주를 해결하는 데 능률을 더해줌으로써 많은 생산량을 올리는 데 사용되었다. 보다 많은 동물을 사냥하기 위해 석부(石斧)·석촉(石) ·석도(石刀)·석검(石劍) 등을 만들었다면 손으로 사냥하기보다 힘을 덜 들이고 더 많은 것을 잡았을 것이다. 뼈로 만든 낚시바늘이나 옷을 만드는 데 쓰인 바늘, 그리고 먹을 것을 담는 토기 등도 모두 그들의 일상생활에 긴요하게 쓰였다. 이와 같은 도구를 만드는 지혜로 더 새로운 것을 발명했다. 최초에 생긴 석기는 뗀석기[打製石器]였다. 더 단단한 돌로 두들겨서 필요한 곳에 날카로운 날을 만들어 썼다. 그것도 손으로 잡기 위해서나, 자루를 달아매기에 어울리는 형태로 만들기 위해 모양을 가다듬지 않을 수 없었다.

여기에서 벌써 쓰임뿐만 아니라 미(美)도 의식하였다는 혼적을 찾아 볼 수 있다. 이것은 간석기[磨製石器]를 만들게 된 때에 이르러 그 경향이 더 뚜렷해졌다. 도구의 효용가치가 높아지면 그만큼 생산성도 커진다. 따라서, 살림도 넉넉해지고 여가시간도 더 많아진다. 그 시간은 도구를 더 아름답게 만드는 데 쓰였다. 뗀석기의 균형잡힌 아름다움이 바로 이것을 말해준다. 토기들도 보다 더 아름다운 무늬를 넣게 되고 모양도 좋아졌으며, 농경을 알게 되고 부터 이 경향은 더 뚜렷해졌다. 청동기문화가 싹트면서 인간이 도구를 아름답게 하려는 욕구는 더 커졌다. 철기 등 다른 금속을 다루게 되면서, 이 도구들의 기능면뿐만 아니라, 구조나 장식도 더 생각하게 되었다.

어느 시대나, 어느 사회에서나 이 두 가지가 꼭 같은 비중으로 존재하였던 것은 아니다. 그 시대와 사회의 요구에 따라서 기능적인 요소가 또는 장식적인 요소가 더 요구되기도 하여, 각각 다른 형태의 공예가 나타나기도 하였다. 한 문화가 일어날 때에는 보다 기능적이며 힘찬 형태의 것이 만들어지지만, 그 전성기를 지나면 더 사치스럽고 장식적인 요소가 더 많아지기도 한다. 이것은 그 문화의 주인공인 인종의 성격에서 그 차이가 더 뚜렷하게 나타나곤 한다.

유럽에서 라틴 인종의 남방계 문화에서는 장식적 요소가 두드러지지만, 게르만 인종의 북방계 문화에서는 기계적 요소가 더 짙다는 식이다. 이것은 르네상스와 고딕, 로코코와 현대, 아르누보와 제체시온 운동 사이에서도 역시 발견된다. 이 요소들은 공예를 지탱하는 두 기둥이며, 시대의 기호나 사람들의 생각에 따라 늘 여러 모로 변천해왔다. 이 두 요소의 관계를 보면, 기능에 대한 요구가 만족되면 비로소 미에 대한 요구에 눈을 뜨게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기능과 쓰임에 주력하던 원시적 제작이 미와 장식을 의식하게 되는 단계에 와서 비로소 고대공예의 꽃이 피었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근대공업이 제품의 미를 자각한 때, 현대공예가 그 첫걸음을 내디뎠다고 할 수 있다. 쓰임의 목적을 충족하면 미에 대한 충족도 이루어져오지만, 때로는 미에 너무 기울어져 균형을 잃은 시대도 있었다. 사회의 발전과 더불어 부의 축적과 권력의 지배가 이루어지면, 공인(工人)들이 권력자를 위해서 여러 장식기술을 구사하기 때문에 장식은 더욱 번창하게 된다. 고대 서양의 여러 왕조, 즉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미케네에서 번영한 장식예술이 바로 그와 같은 것이다. 여기에서 장식과 기능, 미와 용의 균형이 깨지고, 장식을 위한 장식, 미를 위한 미가 태어나게 된다. 사람들은 이런 권력자가 소유하였던 화려한 유품에서 공예문화를 생각하지만, 공예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기능과 장식, 용과 미의 올바른 균형에서 비로소 아름다워지고, 생명을 얻는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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