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May 28, 2014

속죄와 번지점프를 하다.

루카스가 사다 준 정체모를 딱딱하고 시큼한 독일빵을 뜯어먹으며 이언 메큐언의 속죄를 읽다가 문득 번지점프를 하다의 마지막 장면이 떠오르며 영화가 완전히 이해 되어 버렸다. 그래서 컴퓨터로 달려와 이 순간을 적어두려한다.

남녀가 사랑을 나누는 장면 중 가장 도발적이고 하지만 너무나 아름다웠던 영화는 색계였고, (남자 주인공이 양조위가 아니었다면 그 관계가 아름답기는 도저히 불가능했을 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좀전에 남녀의 관계를 너무나 아름답게 묘사한 부분을 활자로 읽게 됐다. 남녀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처음으로 사랑을 나누는 순간, 물론 그 순간은 언제나 아름답기 마련이지만 아무튼 책으로는 내가 본 표현 중 가장 사랑스럽다. 여기에 전문을 적어본다. 

그들은 곧 서재 책꽂이에 비스듬히 몸을 기대어 사랑을 나누기 시작했고 그들의 움직임에 따라 책쫒이에서는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이런 경우 사람들은 보통 저 멀리 어딘가 높은 곳에 도달하는 상상을 하곤 한다. 그러나 로비는 자신이 벌써 두개의 높은 봉우리 사이에 있는 평평하고 완만한 지대를 거닐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걸어 돌아다니며 이곳저곳을 살폈고, 바위가 울퉁불퉁한 가장자리로 다가가 곧 자신이 몸을 내던질 산 아래 가파른 비탈을 내려다보았다. 지금 당장 그곳으로 몸을 날리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지만, 그녀를 배려하는 마음으로 뒤로 물러나 기다릴 수 있었다. 그러나 저 아래에서 유혹의 소리가 들려와 그를 자꾸만 끌어당기고 있어서 저항하기 쉽지 않았다. 저 아래 산비탈에 대한 생각이 머리에서 사라진다면 그 근처에 가지 않을 것이고, 그러면 유혹도 느끼지 않겠지. 그는 자신이 알고 있는 가장 따분한 것들을 생각해내려고 애썼다. 구두닦이 상자, 입학 지원서, 그의 침실 마룻바닥에 뒹굴고 있는 젖은 수건, 뚜껑이 뒤집힌 채 반쯤 열려 빗물이 1인치쯤 차버린 쓰레기 통, 하우스먼의 시집 겉표지에 생긴 차 얼룩. 이어지던 상상 속의 그림들이 그녀 때문에 그만 끊어져버리고 말았다. 그녀는 그의 이름을 부르면서 그의 귀에 대고 초대의 말을 속삭이고 있었다. 그랬다 그들은 함께 뛰어내릴 것이다. 지금 그는 그녀와 함께 구름에 가려진 저 아래의 산비탈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두 사람은 이제 곧 손을 꼭 잡고 뛰어 내릴 것이다.

두 사람은 이제 곧 손을 꼭 잡고 뛰어 내릴 것이다. 라니... 표현 한번 대단하다. 
번지점프를 하다에서 인우와 태희가 마지막에 결국 죽음을 택한 것이 나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들었다. 아니 사랑하면 계속 만나야지 왜 죽습니까. 또 하필이면 왜 번지점프였을까싶었다. 어쨌든 둘은 죽은 것이 아니라 손을 꼭 잡고 함께 뛰어내린 것이다. 힌트는 있었다. 인우와 태희가 뛰어내린 후 화면은 아찔한 계곡 사이를 유영하듯 날아가며 그것이 '끝'이 아님을 보여준다.  끝이 다시 시작임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그래서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첫 장면이기도 한 것이다. 이 얼마나 은밀하고도 시적이면서 멋진 마무리인가. 이제서야 그 장면이 이해가 가고 감독도 그걸 의도한건지 알고 싶다.


번지점프를 하다가 2001년 개봉인데 매큐언의 속죄도 2001년에 출판됐다. 이런 우연이.
마지막 장면이 어딘가에서 영향을 받았을 수도 있을까 싶어 찾아봤는데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좋다. 이런 퍼즐이 맞춰지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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